사라 먼치는 나이(40세)에 비해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미국 미주리 출신으로 애리조나에서 대학을 나왔다. 이후 애리조나리퍼블릭의 스페인어 신문 ‘라보스’를 거쳐 본지 격인 애리조나리퍼블릭으로 스카우트됐다. 

이후에는 정치권에서, 또 공무원으로도 일한 적이 있다. 모교인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저널리즘스쿨 강사로 근무하면서, 기사작성법 등 기초 과목을 가르치는 한편, 학생들을 데리고 브라질 올림픽 현장 취재를 나갔다. 

지금은 비영리기관의 홍보컨설팅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한편, 애리조나리퍼블릭에서 종합 1면 등 지면을 편집한다. 자신이 창업한 자전거 전문 인터넷 매체의 대표이기도 하다. 

앞서 소개한 월터 로빈슨이나 수전 리소비츠 등에 비해서는 젊고 평범해 보인다. 먼치를 인터뷰했던 이유는 기자 출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달 말 먼치를 만나 인터뷰를 청했다. (괄호 안은 기자의 설명.) 

▲ 사라 먼치 
▲ 사라 먼치 

- 언론계에 입문한 계기를 말해달라. 

“우선 언론에 관심이 많았고, 고교와 대학 때도 여러 활동을 했다. 애리조나주립대 크롱카이트스쿨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대학 때 인턴으로 애리조나리퍼블릭, 라보스,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신문 헤럴드 선에서 일했다.” 

- 미주리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저널리즘스쿨이 있는데, 왜 다른 지역에서 공부했나. 

“개인적인 이유에서다. 가족이 다 미주리에 있어서 다른 지역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 인턴을 꽤 많이 했는데…. 

“다양한 경험을 원했다. 본래 애틀란타에서 인종 문제를 많이 다루고 싶었다. 하지만 애리조나에서 공부하며 살다 보니, 이곳에서 인종 문제나 이민자 문제를 다루는 것이 재미있고 또 의미가 있어서 남게 됐다.” 

- 첫 직장인 라보스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라보스에서는 인턴으로 근무를 시작했는데, 정규직 전환이 돼 입사됐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자가 예닐곱명 정도 되는 작은 편집국이었다. 주의회 이슈를 커버하고, 이민자 문제와 시위 현장을 다뤘다. 라보스에는 우루과이,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 다양한 라틴 아메리카 출신 기자가 있어서 다양한 문화를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 지원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 미주리에는 히스패닉 인구도 많지 않지 않나. 스페인어가 모국어가 아닌데 기사 쓰는 언어로서 스페인어를 어떻게 공부했는지 궁금하다. (미국 인구통계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미주리의 라틴 및 히스패닉 인구 비중은 4.4%다.) 

“그렇다. 나는 남자 형제가 3명 있다. 그중 한 명이 언어학자다. 그는 고교 때 프랑스어를 배우고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어는 배우고 싶지 않았다. (웃음) 고교 때부터 스페인어를 배웠고 대학 때 멕시코에서 연수도 하면서 실력을 쌓았다. 지금은 스페인어를 더 잘하게 됐다. 스페인어를 익히려면 자신의 공부법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학 때, 멕시코를 다녀오고 졸업 후에도 스페인어 수업을 들어서 도움이 됐다.” 

- 미국에서는 스페인어권 언론 시장이 커지는 추세다. 

“계속 커질 것이라고 본다. 미국 사회가 더 다양해지고 더 포용력 있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영어와 스페인어권 미디어는 단순히 보도의 언어가 다른 것 외에도, 독자층이 다르고 독자들이 사는 양태와 문화가 다르다.” (2019년 11월 17일 미 공영방송 NPR이 보도한 대담에 따르면, 미국 인구의 약 20%가 라틴계다. 이 대담에서 가르시엘라 모츠코프스키 뉴욕시립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라틴계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매체는 대부분 스페인어에 강세가 있고, 이들 매체는 플랫폼이나 (뉴스) 유통 모델 차원에서 매우 전통적”이라고 분석한바 있다.) 

- 애리조나리퍼블릭으로 이직한 이유는…. 

“사회부 기자가 필요하니 한번 와보라고 해서 갔다. 가니까 원서 내라고 해서 낸 뒤에 입사했다. 라보스에서 이민자 문제를 다루면서 주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쓴 덕분 같다. 애리조나리퍼블릭으로 옮긴 뒤에는 연쇄 총격범 등의 이슈를 다뤘으며, 이 문제를 다룬 영국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적이 있다.” 

- 무슨 다큐인가. 

“우드커트미디어라는 제작사에서 만든 ‘세계에서 가장 나쁜 살인자들’이라는 다큐멘터리였다.” 

- 이후에는 정치권으로 옮겼는데…. 

“연방 하원의원 선거 캠프에서 일했다. 이후에는 4년 동안 주 하원에서 민주당을 위해 일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25명 정도 있었다.” 

- 기자와 정치인은 어떤 점이 다른가. 

“입장을 바꾸는 것(switching side)이라고 할까. 싸우는 것은 아니고 말이다. 대중을 상대로 내 견해로 설득하는 것이 정치인의 입장이라면, 대중에게 진실을 전하는 것이 기자의 몫이다. 기자 출신으로서 정치인에게 미디어 트레이닝을 하는 것도 내 역할이었다.” 

-정치권으로 간 것을 후회하지는 않나. 한국에서는 언론인이 정치에 입문하는 것을 외도한다고 표현하는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예-아니오의 답변이 필요한 질문이 아니라 생각한다. 내게 정치는 저널리즘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저널리즘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또한 투명하게 정치를 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가치와 상충하지는 않는다. 또 저널리즘을 모르는 정치인을 트레이닝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 일한 점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재밌고 즐겁게 일했고,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시민을 돕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기사를 쓰던 때가 그립기는 했다.” 

-이후에는 피닉스시청에서 일했는데…. 

“시청 공보국장으로 2년간 일했다. 시 정부는 주의회와는 또 다르다. 25명의 민주당 주 하원의원을 위해 일하는 것과, 1명의 정치인, 피닉스시장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다르다.” 

- 피닉스시장은 주지사 등 더 큰 지역을 다루는 정치인으로 가는 관문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당시 시장은 연방하원의원이 됐다.” 

- 정치권에서 떠난 이후 무슨 일을 했나. 

“정치에서 떠나 좀 쉬고 싶었다. 그래서 모교로 돌아와 석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문과대학 통합마케팅담당자로 일했다. 내 역할은 문과대학 내 18개 학과의 마케팅 캠페인을 하고 관련한 홍보를 맡는 일이다. 또한 크롱카이트저널리즘스쿨에서 강사도 했다. 기사 작성과 보도, 멀티미디어 저널리즘, 코딩의 기초, 우등생 논문지도 등을 했다.” 

- 저널리즘스쿨 강사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학생 20여 명을 데리고 올림픽 취재를 갔다. 사전에 피닉스 본교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학생 중에서 일부를 해외 교육 및 실무경험 차원에서 선발했다. 브라질에 가기 전에 해외 취재의 기본기에 대해 교육을 했으며, 각자 기사 아이디어를 준비해 오라고 했다. 학생이 쓴 기사는 학내 매체인 크롱카이트 뉴스 등에서 보도됐으며, 애리조나리퍼블릭에도 실리기도 했다.” 

- 학생에게 현장 취재 출입증이 나오나. 

“일부 경기는 출입증이 나왔고, 출입증이 안 나오는 경기도 있었다. 하지만 사진 촬영은 할 수 없었다. 여자 축구 결승전 경기는 교수가 학생 입장권을 모두 사서 관객으로 지켜보면서 기사를 쓰기도 했다.” 

▲ 사라 먼치가 창간한 ‘클립트인’ 
▲ 사라 먼치가 창간한 ‘클립트인’ 

- 사이클링과 자전거를 다루는 인터넷 매체를 창업했는데…. 

“클립트인이라는 매체를 만들어서 운영한다. 2013년 창업해 애리조나 지역을 중심으로 취재했고, 2016년부터는 미국 전역을 커버한다. 사이클계의 ‘와이어드’를 생각하면 콘셉트를 이해하기 쉽다.” 

- 수익이 나는가? 

“코로나19 때문에 최근 2년은 좀 힘들었다. 자전거 뉴스가 아예 없었다. 그 이전에는 괜찮았다. 클립트인은 라이딩 행사를 메인으로 다룬다. 자전거 행사를 누구나 올릴 수 있고 또 내가 기사로도 다룬다. 자신의 자전거 행사를 알리기 위한 광고주가 있으며, 자전거 행사 홍보컨설팅 용역이 들어오기도 한다. 조만간 뉴멕시코주에 큰 사이클 이벤트가 있어서 취재도 간다.” 

- 경쟁사는 없나. 인원은 몇 명인가. 

“사이클링을 다루는 매체가 있다. 하지만 다 큰 규모고 우리와는 성격이 다르다. 우리는 사이클링 이벤트에 집중하는 매체다. 매체는 나 혼자 운영하고, 개발자 1명을 계약직으로 고용했다. 또한 기고자를 가끔 둔다. 학생 인턴도 있고, 워싱턴DC에서 자전거 기사를 쓰러 가끔 현장으로 오는 기고자도 있다.” 

- 파트타임으로 개닛(USA투데이 모기업) 소속 편집기자로 일하는데…. 

“2016년부터 개닛에서 편집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파트 타임으로 전환했다. 말 그대로 종이신문 지면 편집자다. 애리조나리퍼블릭 시내판의 종합 1면 등을 최종으로 보는 사람이다. 제목을 뽑고 레이아웃도 정한다. 대개 오후 4~8시 일하고, 늦어지면 오후 10시까지도 일한다. 화요일과 토요일은 쉬는데, 개인적으로 쉬고 싶은 날이라 그렇다.” 

- 디지털퍼스트 시대에 출고 프로세스는 어떤가. 

“일단 현장 기자가 취재하고, 부장이 데스크를 본 뒤 온라인에 실린다. 그리고 종이 지면에 실리려면 내가 최종적으로 제목을 달고 기사를 자르고, 캡션 편집을 한다.” 

- 취재기자와 편집기자의 업무는 어떻게 다른가. 

“좋은 신문을 만든다는 목적은 같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편집은 취재보다 더 창의적인 직무다. 그리고 더 독립적이다. 취재기자는 자신이 의존해야 하는 사람이 취재원도 있고, 부장도 있고, 편집기자도 있다. 하지만 편집기자는 내 지면에서는 내가 왕이다. 나는 글쓰기도 좋아하지만 편집도 좋아한다. 좋은 제목을 다는 것에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편집기자로서 좋은 제목을 달면 기분이 좋다.” 

- 당신의 본업은 홍보컨설팅인데…. 

“그렇다. 마츠앤드런디라는 홍보컨설팅사에서 일한다. 주로 비영리기관을 위한 홍보컨설팅을 맡는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건축대학이나 뉴욕에 있는 지속가능한 농업 비영리기관 ‘스톤 반 센터’, 하와이 커뮤니티 재단 등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외에 프리랜서로 홍보 일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책 윤문도 한다.” 

- 향후 계획은…. 

“석사 전공(쿠바의 미디어 개발)과 연관된 일을 해보고 싶다.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어 구상 중이다. 또한 지금의 일을 일부 정리하고, 저널리즘 분야로 완전히 돌아가고 싶다. 지금은 영상 시대다. 비디오로 (다큐멘터리 등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등) 방법을 찾고 있다. 세부 주제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다루고 싶다. 영화 제작도 하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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