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12세 전후에 평생의 음악적 취향이 결정된다고 한다. 물론 나이가 들며 취향이 바뀔 수도 있지만 전반적 취향의 형성이 10세에서 14세 사이에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내가 그 즈음 들었던 음악들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흘러나온 팝이나 TV 음악프로그램의 최신 가요들이 주를 이뤘다. 지금도 그때 한창 들었던 음악을 들으면 가사가 저절로 읊어진다. 열네 살 때 생일 선물로 받은 256메가바이트 용량의 MP3는 작지만 강력한 심포니를 만들어 주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걷는 내내 전날 밤 고심하여 몇 개의 파일을 지우고 골라 넣은 음악들이 나를 위로했다. 

현재의 나는 무려 80기가바이트의 MP3를 사용한다. 웬만한 외장하드디스크에 버금가는 용량이다. 장점이라면 컴퓨터와 거의 동기화 되어 더 이상 무엇을 삭제할지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내가 뭘 넣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 가수 이름이나 앨범으로 찾는 것도 한계가 있다. 듣고 싶은 음악을 찾기가 쉽지 않아진다. 그러던 중 옛날에나 듣던 음악이 랜덤 재생됐다. 지금은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옛 아이돌 그룹들의 음악은 요즘 음악들과 달리 신선하다. 화려한 신디사이저, 전자음악의 도움 없이 오케스트라 위주의 리듬이 만들어진다.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분명 더 발전된 기술과 자본이 음반시장을 장악하는 지금, 왜 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의 가요보다 오래 들을 음악이 적어진 걸까? 이미 평생의 음악적 취향이 형성됐다고 믿는 상태에서 이런 질문은 우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 출시된 앨범에 열광하다가 곧 잊히는 노래들이 범람하게 된 데엔 다른 이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남성 5인조 그룹이었던 'g.o.d'는 작곡가 박진영이 준 곡들로 히트를 쳤다. 당시의 가요를 즐겼던 세대라면 그들의 이름을 통해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가 풍기는 노래들을  떠올릴 것이다. 지금의 아이돌과 같은 군무 실력은 없었다. 다만 기승전결이 있고 완성도 있는 음악만은 생생히 맴돈다.

요즘의 '이미지즘'적 세태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아이돌 가수들은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최선을 다해 선보인다. 눈을 즐겁게 하는 외모, 오랜 연습으로 다져진 노래 실력, 화려한 비트를 뽐내는 춤사위는 노력 없이 이뤄질 수 없는 것들이다. 어쩌면 과거의 몇몇 그룹들보다 실력 면에서 더 낫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 자체에 공을 들이기보다 시각적 자극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다는 낌새는 누가 봐도 알아차릴 수 있다. 때문에 일시적인 유행을 통해 거리 곳곳에 음악이 울려 퍼지지만, 정작 시간이 지나고 보면 기억나는 노래들이 없다. "이 앨범은 꼭 사서 들어볼 가치가 있어!"보다 "지난번에 그 곡보다는 많이 들리겠군"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고질적인 문제는 일률성이다. 가요에 대한 수요는 청소년과 20대, 30대가 존재하는 한 다양하다. 그에 비해 공급되는 음악은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외국에서 유행한다는 이유만으로 유명 작곡가들은 비슷한 음악들을 샘플링 한다. 멜로디보다는 시각적 퍼포먼스에 맞춘 반복성을 중시한다. 또 요즘 가수들은 나름대로 예능, 드라마, 영화 등으로 진출하여 각자 갈 길을 찾아 본인들의 수익성을 높이니 자연히 본업에 대한 고민은 적어진다. 정말로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음악을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최근 KBS가 기획해 방영 예정인 프로그램 중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이라는 것이 있다. 예전에 사라진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모아 오디션을 실시한 후, 새롭게 경쟁력 있는 아이돌그룹을 구성하겠다는 취지다.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취지가 달라 눈길이 간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떨어지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귀가해야 할까? '써클', '티티야', '투야', '이글파이브', '태사자', 'O.P.P.A' 등 한때 가수라는 직업을 택했던 그들은 그룹 이름을 대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또 한 번 탈락을 경험할지도 모른 채 오디션에 참가할 누군가가 안쓰럽다. 연습생으로 지내는 동안 남들이 받는 교육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크는 젊은 영혼들은 어쩌면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경쟁시장의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음악을 선호한다. 비록 취향의 다름은 있을지언정 진심으로 노래하는 이들은 돋보이기 마련이다. 단기적으로 흥행하는 다작보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회자되는 명작 한 편이 필요하다. 비교적 한국의 인디밴드들은 그런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이돌 그룹에게 그들과 같은 열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보통의 사람들보다 뛰어난 재능도 있고 끼도 많은 그들은 우선 본질을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하고 싶어 이 일을 하는 지 아니면 음악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이 일을 하는 것인지 본인에게 물어보고 시작한다면, 지금보다 질이 좋고 그들 스스로 더 오래 즐기는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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